천불암 풍경구 안내

남쪽으로부터 북쪽까지:

남쪽 입구 패루→ 주차장→ 화장실→ 쇼핑거리→ 불교 다방→ 청토각→ 가릉강 부두→ 극루→ 비석 정자→ 전자평→ 식당→ 여행객 센터→ 대문→ 대운사→ 금우도 유적지→ 천불암 역사 진열관→ 석굴구→ 화장실→ 달마샘→북문

천불암 석각 마암 석상

천불암 석각 마암 석상은 북위 시기에 만들어진것으로 당나라, 오대, 청나라 시기에 일부 제작되었다. 현재 보유되고 있는 불상은 1192개, 석상은 7000여건이 있다. 당나라시기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각 시기별 118개로 기존 유명한 인물들의 시와 작품 30여건이 세겨져 있으며 사천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석굴로 1961년 국무원으로부터 발표한 국내 최초 주요 문물 보호 대상지이다.

천불암에는 여러가지 대표적인 동굴들이 있는데 대부분 장안, 낙약 지역의 관원들이 투자하여 제작한것으로, 장안과 낙양지역 불교 석각예술의 유행 스타일 및 예술 수준을 반영하고 있으며 독특한 조각 형식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우수한 석각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대운사 대운사는 지난 북위 시기에 세워진것으로 기존까지 백당사로 불리웠다. 무측천이 황제 자리에 오른후 국내 각 지역에 대운사를 세울것을 지시하였는데 그 이후부터 대운사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유되고 있는 불상과 사찰 건물들은 청나라 건륭 19년(1754년)에 광원현 관원 장제막의 지원을 받아 세운것이다.
석제각 천불암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절벽과 마주해 있으며 하천과 인접되어 있다. 금우도에서 유명한 전각이다. 당나라 시기 소종 건원2년(기원 759년)에 두보는 가족들과 같이 촉나라에 방문하면서 이곳을 경유하다가 <석제각>이라는 시를 지었다.
금우도 유적지 금우도는 또한 석우도, 오정도, 금각도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석우분금, 오정개도”라는 전설에 따르면 진나라와 촉나라간의 주요 통로이다. 금우도는 삼국시기로부터 천불암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그후에도 천불암을 지나가게 되었다. 1935년 국민정부는 사천-섬서 도로를 건설하면서 석굴이 많이 훼손되었다. 2009년 10월, 천불암 앞쪽의 사천-섬서 도로는 산 뒷쪽 터널로 길을 바꾸게 되었다. 당해에 문물 보호 기관은 천불암 앞쪽 도로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금우도 유적지—석판길, 석란교, 삭공 등 유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명나라 시기 석각 달마상 유적지 명나라 시기 천불암에는 달마사찰이 세워져 있었는데 민국 초기에 사찰이 훼손되었다. 사찰내의 석각 달마상은 1935년에 사천-섬서 도로를 만들면서 파뭍히게 되었다. 2010년 4월, 고고학 발굴로 출토되었는데 20여건이 보존되어 있다.

천 불상 절벽 경치 좋은 지역